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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에버 클래식 <극한직업>

    세줄 요약:

    1. 황동이 다시 봐도 인간미 있어.
    2. 기술직 우대해주고 연봉 상한선 높더라도 프로젝트 실패의 리스크가 그렇게까지 높으면 조금 곤란하다.
    3. 띵띵띵띵 띵띵 딩딩딩-, 하는 중국 bgm 어디서 나온 건가요???

    퇴근을 하고, 집을 정리한 뒤 무엇을 할까 고민하면서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너무 많은 생각을 소화하기는 귀찮고, 익숙한 맛이 또 먹고 싶어서, <극한직업>을 선택해서 봤다. 코로나가 오기 전 영화관에서 빵 터져서 봤던 영화,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뭔가 거슬리는 부분 하나 없이 뇌에 힘 빼고 시청할 수 있는 한국영화, <극한직업>. 최애 영화 중 하나라고 부를 수 있다.

    첫 장면부터 나오는 황동이. 약쟁이인데 무려 1일1식하고, 건강검진도 다니고, 간접흡연 앞에 침묵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사업 행위를 방해하는 경찰들의 인권까지 걱정해주는데, 그걸 보면서 내 밥그릇만 걱정하고, 내 주식만 신경쓰고, (과거에 찬란했던) 체력을 믿고 오늘날까지도 건강을 챙기지 않는 나레기 조금 반성했다. 그러고 보니까 건강검진 안 받은 게… 퇴사하고 받은 적 없으니까 벌써 2년이다.

    뭐 더 말을 얹을 필요가 없는 벤츠 아줌마. 안 그래도 바로 어제 차가 출고되었다는 연락이 와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미장이 열리면 갖고 있던 엔비디아를 파니마니 하고 있던 시점이어서 벤츠 아줌마가 기를 쓰고 자동차를 재탈취해오는 장면이 지금도 인상 깊다. 그리고 GTA 스타일로 운전자를 옮기면서도 황동이는 아줌마 머리채를 잡지 않았지만 아줌마는 황동이의 머리채를 잡고 치우는 것도 이 영화가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는 데에 일조한다.

    서장이 마약반 분들한테 “직업이 적성에 안 맞는 거 아니냐”면서 “선배된 도리로서” 거취를 고민해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인데, 생각해보니까 경찰들도 다 경찰대 선후배인건가? 저 쪽도 학교 몇 개가 독점하고 있는 구조였구나. 두 다리 건너면 모두가 아는 업계라니, 사회생활 쉽지 않겠다.

    고 반장이랑 들어올 때는 동생, 나갈 때는 형이 되신 분의 저녁 식사 장면. 아, 근데 그 얘기 하기 전에, 소고기 회식인데 타 팀까지 끼워주는 건 진짜 사랑 아닌가요? 이 식사 자리에서 두 사람 사이에서 “홍상필이가 뽕쟁이들 다시 입사시켰다,” 뭐, 이런 맥락의 얘기를 하는데, 새삼 경기가 안 좋아서 프리 시장이 얼어붙으니까 다들 인하우스로 들어가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까지 마약판매원들은 살짝 야쿠르트 아줌마들처럼 다 개인사업자로 3.3% 떼는 구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웃소싱 형태가 아니라 다 자기들 직원으로 데려가는 구조였나보다. 따수워…

    치킨집 내부 인테리어, 저 벽 색깔 예쁘지 않나요.

    장사가 미친듯이 잘 되는 저 치킨집을 보고 있자니, 돈이 따르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게 새삼 실감났다. 그리고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심지어 13팀이 워크인으로 들어온거면 괜찮지 않아?

    마약 유통도 강력반하고 마약반으로 나눠져있다. 나름 체계가 있어. 심지어 마약반은 억대 연봉이고, 강력반 위험수당까지 회사가 챙겨주나보다. 저 장면을 다시 보면서 저기는 통역사 안 뽑나, 영화 후반부까지 보니까 해외하고도 사업적인 연이 닿아있는 것 같더만… 좀 더 뇌가 말랑말랑할 때 다른 불어니 일본어니 찔러볼 게 아니라 중국어를 했었어야 해. 성조 앞에서 회피할 게 아니라 맞섰어야 해.

    “기술직이 우대받는 세상”을 주창하던 마약반 팀장. 비슷하게 통역 기술로 얼레벌레 먹고 사는 나도 여기서 조금 감동이었다. 심지어 국가자격증처럼 제도로 관리되는 기술도 아니어서 해맑은 유저들을 상대해야 하고, 차별점 있는 서비스를 위한 퀄리티 관리를 자체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조차 똑같잖아…!! 자기 기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자기 팀을 위해서 저렇게 싸워주는 상사라니. 뒤에 보니까 마약반 강력반 싸울 때 탱커 역일 강력반 앞에서도 기 죽지 않고 마약반 열심히 싸우던데, 팀장이 이렇게 팀을 위해주면 나 같아도 열심히 싸울 듯.

    마약반이 이겼을 때는 동일한 조직명의 경찰들도 기뻐했고, 나도 기뻐했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무슨 애가 이렇게 직업 정신이 없어?”라는 고 반장의 핀잔. 경찰 일을 할 때와 치킨집 일을 할 때의 일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쟤는 치킨집 사장 쪽이 영혼의 적성이다. 공무원이라는 게 다 좋은 건 아닌 건데…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양파 네 자루, 마늘 다섯 접, 파 서른세 단”. 물론 나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요새 사람들 책 안 읽고, 맨날 15초짜리 쇼츠에 뇌가 절여져서 말하는 것도 멍청해지고, 자기 문장도 스스로 못 끝내는 멍청이들이 나름 사회인이라고 발에 신발 신고 돌아다니는 이런 시대에 누군가는 저렇게 정확한 세는 단위를 구사하는 거 감동적이었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달까.

    “믿고 거래할 새끼가 대한민국에 정규직이 없어서 알바를 해?” 프리도 인하우스로 품어주는 회사여도, 구직 시장이 얼어붙은 거는 저쪽도 예외가 아닌가보다. 사회 전반에 걸쳐 든든한 고용안정망을 구축하는 것이 사측에게도 이익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무리 할 짓이 없어도 먹을 것 같고 장난치면 벌받는 거야”. 민족 정신을 권선징악의 언어로 옮긴다면 이런 문장이 되지 않을까. 심지어 나쁜 일을 밥벌이로 삼는 악당들이 저런 말을 하니까 더더욱. 뒤이어 이어지는 대사는 정 실장의 “네, 저희는 정품, 정량, 장사는 신뢰죠”. 다들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나름의 직업 의식은 분명하게 갖고 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쨌든 영화는 저 팀의 흐려진 메타 인지를 뜯어고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간다.

    “니, 니 중국 말 할 줄 아니?” 역시 외국어만한 기술이 없다. 그리고 본업 하나 잡고 있고 거기에 외국어 하나 얹으면 금상첨화지, 뭐. 난 저 마 형사 캐릭터가 되게 마음에 들었던 게, 마 형사는 화교 출신인데, 화교라는 게 마 형사 정체성의 전부인 것처럼 표현되지 않은 게 좋았다.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하기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한국은 나라, 국적, 민족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컨텐츠에서도 개인의 특징을 좀 더 규모가 큰 집단에서 따오는 걸 되게 쉽게 쉽게 볼 수 있는데, <극한직업>은 그런 부분에서 절제를 한 게 되게 마음에 든다. 그리고 뭐랄까… 마 형사는 주인공 팀의 큰 축을 담당하는 사람인데 한 팀으로 하나의 목표를 보고, 하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꼭 같은 민족, 핏줄일 필요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내가 이런 날이 올까봐 목발을 스덴으로 했다”는 홍상필이. 예전에 고 반장네가 잠복할 때 보면 홍상필이 “사우나 말고는 가는 데가 없”다는 말도 나오고, 저번에 선희 씨한테 당하는 장면도 나와서인지 그냥 뭐 없는 중간관리자로 보이지만, 그래도 저 정도의 준비성과 선견지명은 있어야 승진을 하는 거구나.

    이 장면을 보고, 아무리 억대 연봉을 주는 회사여도 저런 데는 입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매장이라니. 기업 문화가 너무… 고풍적이다. 그것도 현장직도 아닌 사무직한테? 아니, 현장직은 생매장 OK라는 말이 아니라, 사무직은 원래 리스크도 조금만, 대신 보상도 조금만이잖아. 살계경후라고, 일전에 홍상필이 발목을 부러뜨려서 정 실장 기게 만드는 장면에서도 와, 상사 성질머리가 저러면 피곤하겠다, 싶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돈도 안 주면서 성질머리 더러운 상사도 있는데, 그래도 저기는 돈은 챙겨주겠지, 정도의 감상이 들었는데, 일이 틀어졌을 때 내가 져야하는 책임의 범위가 회사와 빠이빠이가 아니라 이승과 빠이빠이라니. 무슨 중원 통일을 꿈꾸는 군벌 섬기는 장수도 아니고. 아, 장수는 현장직이지. 중원 통일 꿈꾸는 군벌 섬기는 군량미 조달관도 아니고.

    그래도 이 언니가 이무배 수행 경호원까지 올라간 걸 보면 회사가 남초이기는 해도 실력만 있으면 따로 유리천장 빡세게 적용하는 회사는 아닌 것 같은데. 아쉽게 되었다.

    아, 그리고 제훈이 야구부 출신이라는 것을 듣고 나니까 보이는 그의 제구력. 사람의 머리는 분명 스트라이크존보다 작을텐데, 쟤가 야구를 계속 했다면 네모 안에 공을 넣는 투수가 한 명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영웅본색> 노래도 좋고, 영화 전반에 걸쳐서 bgm에 닭 꼬꼬닥 하는 소리가 같이 섞여나와서 좋았다. 닭이 이 영화의 되게 중요한 한 부분인데, 닭의 기여분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띵띵띵띵 띵띵 딩딩딩-, 하는 뭔가 땅에 구슬이 떨어지는 것 같은 중국풍 멜로디가 종종 나오는데, 분명 어디 게임 같은 데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검색해봐도 “당년전” 밖에 나오지 않는다. 좀 유명한 중국 영화들을 찾아보면 그게 어디 오마주인줄 알 수 있으려나. 분명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데.

  • 드디어

    드디어 <파묘>

    세줄 요약:

    1. 미리 스포를 당하고, 세부적인 촬영 비하인드 같은 것을 미리 찾아보고 나서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보면 공포영화도 조금 덜 무서운 것 같다 (가설).
    2. 장군의 우선순위가 분명한 것 같아서 보면서 마음이 놓였다.
    3.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기한 무급 노동.

    영화 <파묘>를 봤다. 워낙 오랜만에 흥행했던 영화라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었고, 어떤 내용인지도 알고 있었고, 사실 궁금하기는 했는데 공포영화 시청의 후유증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접어두고 있던 차였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알고리즘에 파묘에 숨겨져 있던 상징들(?) 이런 블로그 포스트를 보고 호기심도 동하기도 했고, 뭔가 자발적 스포일러를 당해 보니 무서운 마음도 조금 사라져서 결국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봤다. 사실 그마저도 무서워서 TV나 빔프로젝터로는 못보고 핸드폰 작은 화면으로 봤다. 핸드폰 화면 너머에 있는 소파 위에 아직 개지 않은 수건더미라던가, 드라이를 맡겨야 하는 옷 무더기 등으로 언제든 눈을 돌릴 수 있게.

    감상은 나쁘지 않았다. <검은사제들>까지만 하더라도 영화관에서 서라운드 효과를 톡톡히 누리면서 봤어서 그런지 보면서 되게 무서웠고, 보고 나서 한동안 계속 무서웠는데, 걱정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조금 긴장했던 김고은의 굿 장면은 되게 절제된 연출로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것 없이 표현된 것 같았고, 잊을 만하면 기독교적인 대사나 설정들이 다시 나와서 오컬트적인 부분을 중화시켜주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전반적인 느낌이 오컬트보다는 좀 더 민족주의 영화 같은 느낌을 줘서 그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하나 더 좋았던 건 항상 공포영화 보면서 생각하는 건데, 만약 귀신이랑 주인공이랑 막 싸우는데 그 장소가 주변에 사람이 있을 만한 환경이라고 하면, 나는 항상 저러다가 귀신이 수틀려서 옆집에 있는 사람 인질로 잡고 우위를 점하려고 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한다. 마치 <제임스 본드> 영화의 추격씬에서 제임스 본드가 노점상 같은 걸 파괴하면서 달리면 슬퍼할 그 노점상 주인에게 이입하게 되는 것처럼, 내가 귀신의 인질이 되는 그 옆집 사는 엑스트라가 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근데 이 영화에서는 귀신 역인 장군이 계속 자기가 돌아가야 하는 곳의 위도를 반복적으로 외워줘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아, 쟤는 우선순위가 분명하구나, 뭘 하더라도 일단 자기 집으로 먼저 돌아가서 생각하겠다는 거구나, 하는 느낌이라, 얘가 강원도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시 송파구에 살고 있는 나한테 굳이 관심을 갖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었다.

    영화라는 건 알고 있지만, 어쨌든 스크린/화면/브라운관이라는 얇은 벽을 하나 두고 쟤랑 나랑 소통하는 것이지 않는가. 뭐, 일방적 소통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소통은 소통이니까 내가 쟤를 컨텐츠로서 구경할 수 있는 것일 테다. 근데 만약 이게 일방적 소통이 아니면? 사실 쟤 나 다 보이는데 일단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전쟁 영화를 보면서 총알이 나한테까지 날아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은 안 하지만,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에서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마 전쟁영화 같은 경우에는 기술이 아직 그만큼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하고 넘겨버리지만 귀신은 과학 기술하고는 또 다른 맥락의 제약을 받는다고 생각을 해서 무서운 것 같다. 그래서 영화가 다 끝나고 주인공이 퇴근하고 나면, 그제서야 나한테 와서, 야, 너 아까 나 쥐어터질 때 좋아하더라? 이럴까봐 걱정되는 것이다.

    근데 파묘의 그 장군은 그래도 그럴 것 같은 느낌이 아니어서 마음이 조금 편했다. 그리고 김고은한테도 그렇고, 최민식한테도 그렇고 계속 부하 얘기를 하는 게,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그래도 구슬려서 부하를 모으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캐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데이비 존스 생각도 났다. 죽을래, 아니면 내 배에서 무기한계약으로 무급노동할래? 사실 <캐러비안의 해적>이 개봉했을 당시에는 학생이어서 왜 저기에서 죽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겠어? 하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게 그냥 레토릭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회인이 된 지금 생각해보니 영화에서 죽겠다고 한 성직자의 선택이 완전 이해불가하지는 않다.

    다시 <파묘>로 돌아와서, 그 불쌍한 스님이 나오는 장면은 조금 무서웠다. 분명 주인공 일행은 화 당하지 말라고, 좋은 마음으로 봉길의 꿈에 나온 것이라는 점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조금 무서웠다. 잠을 깨워야하는 것은 이해되고, 방금 크게 놀랄 만한 일을 당하셔서 쇼크 상태이신 것도 이해되지만, 그래도… 조금 좋게 깨워주실 수도 있지 않나. 봉길이도 놀라고 시청자도 놀라잖아. 맨 처음에는 스님이 죽은 지 모르고 몽유병(?) 아니면 빙의(?) 같은 건지 알고 봉길이 배를 밟고 서 계실 때 쟤 저거 갈비뼈 괜찮나? 하고 생각했다고. 나도 밤에 잘 때 모로 누워서 자는 편인데 그 날 밤에는 옆으로 기대서 잤다.

    아, 그리고 스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절에 살던 강아지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려주면 좋겠다. 장군하고 주인공 일행이 야외에서 대치할 때에도 강아지가 얼핏 나왔는데 그 때도 장군이 따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은 분위기여서 사실 큰 문제 없지 않을까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 스님도 안 계시면 돌봐줄 사람도 없는 걸텐데… 그래도 근처에 다른 집들도 있었을테니까 그 중 하나가 거둬주었겠지, 하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 외에 감상은 조금 뻔하다. 친일파 후손들이 미국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가 몰살 당하는 걸 보면서는 그냥 당연한 전개라고 생각했고, 친일 할아버지가 찾아가는 순서가 자식-손자-증손 이렇게 세대 별로 가지 않고, 딸을 찾아가기보다는 아들 일가를 먼저 족치시는 걸 보면서 아, 상속이 균등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나보다, 정도의 생각을 했다. 근데 이것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닌 게, 작위도 있는 집안이었다고 했고, 영화에서 대놓고 “장손”이라는 표현도 썼고, 사실 지금도 딸한테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해주지 않는 집이 많으니까. 친일 할아버지가 손자 지용한테 들어갔을 때 경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원래 그 창밖 지용이 바라보던 위치가 조선총독부 자리였다고 한다. 새삼 그 건물 부순 게 참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할아버지랑 호텔방하니까 생각난 거 하나 더. 친일 할아버지는 전화로 지용을 교란해서 창문을 열게 하고 그렇게 호텔방에 침투하는데, 잠깐 화면에 잡힌 지용의 핸드폰은 유효한 통화 화면이었다. 그럼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빌려서 지용한테 전화를 건 건가? 아니면 공중전화로? 그게 아니면 그냥 다른 사람이 전화를 했고 거기에 할아버지가 자기 목소리만 입힌 건가? 그리고 창문을 열어서 들어온 거면 할아버지는 방충망 통과 가능하신 건가? 공기나 미세먼지처럼 출입하실 수 있는 거면 조금 곤란하지 않나. 내가 한겨울에 보일러 빠방하게 틀어놓고 찬 공기로 환기하는 환기변태여서 만약 귀신이 방충망을 통과할 수 있는 거라면 매우 곤란하다. 창문마다 명태를 걸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물론 집안 내의 부의 수준을 보았을 때, 집안에 유의미하게 친일을 하신 조상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부러 맞바람이 가능한 집을 찾아서 온 건데… 하지만 환기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그냥 내가 나쁜 짓 안 하고 깨끗하게 살기로 한다.

    어쨌든 <파묘> 재밌었다. 막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도 없고, 하고자 하는 메세지도 분명하고. 악역인 귀신도 비열한 캐릭터인 것 같지는 않아서 좋았다. 외국인 노동자를 왜 적장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는 군인이 민간인을 죽이면 안 된다는 전통이 없나? (이 부분 궁금해서 나중에 찾아보니까 민간인을 죽이면 안 된다, 이런 맥락의 전통들이 성문화된 건 주로 헤이그협약(1907)이랑 제네바협약(1949) 때라고 한다. 왜란 당시에 살던 사람이니 아마 익숙하지 않은가 보다. 아,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얘네 왜란 때 민간인 엄청 죽였지;;) 어쨌든 스님하고 외국인노동자, 그리고 억울하게 살인자로 몰린 곰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얼레벌레 해피엔딩이지 않았나 싶다. 하루 정도 옆으로 누워서 자느라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위에 눌리거나 하는 후유증도 없었고… 나름 선방한 것 같다.